이용웅 칼럼 선교사들이여, 놀아라!

이용웅 선교사(지피선교회 한국본부 대표)

한국 선교는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선교패턴이 대체로 유사하다. 교회개척, 제자훈련, 고아원사역 등등이다. 물론 중요하면서도 본질적인 사역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소명을 따라 일하는 것인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남이 하는 것보고 하는 것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 교포들이 초창기 미국 이민 시절에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직업이 정해졌다고 한다.

세탁소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세탁소 하고 슈퍼마켓 하는 사람이 나오면 슈퍼마켓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선교사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왜 좀 더 창의적인 선교를 할 수 없을까 고민해 보기도 한다. 놀 줄 모르는 한국인, 놀 줄 모르는 선교사 원래 한국 사람은 옛날부터 춤과 노래(歌舞音曲)에 능하다고 주변 나라 사람들이 말할 만큼 잘 놀았다. 그런데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침략 그리고 한국 전쟁 등의 세파에 시달려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사라지고 놀 줄 모르는 백성이 되어 버렸다.

초기 조선에 온 선교사들의 모습에 한국의 많은 가정들이 술과 노름 등으로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놀이문화’를 터부시 했을 수도 있고 우리에게 그동안 놀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은(하긴 우리도 어릴 때부터 그랬듯이) 더더욱 입시 교육에 시달려 놀 줄 모른다. 놀이터에 가도 아이들이 없고 친구를 만나려면 학원에 가야하는 세상이다. 집에서도 TV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다. 어른들도 휴일이면 집에서 뒹굴며 신문이나 TV로 소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교회 사역자들도 휴일과 일하는 날이 별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선교사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놀 줄 모르는 한국인의 특성이 선교사에게도 별반 다름이 없다. 원래 한국 교회가 노는 것을 터부시 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부흥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선교적 관점에서 선교사들이 잘 놀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교 후보생들인 우리 자녀들과 청소년들이 잘 놀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선교는 ‘관계’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는 성경공부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만남 내지는 놀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복음주의자들은 열정은 탁월한데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인간미가 없다’고 함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놀 줄 모르는 재미없고 매력 없는 사람’이라는 뉘앙스도 포함하고 있다. 선교사는 무엇보다 영적 매력이 있어야겠지만 여기에다가 인간적 매력도 동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창의성은 놀이에서 나온다 ‘닥터 홀의 조선 회상’을 보면 대한 제국말기 한국에 온 제임스 홀의 아들 셔우드 홀이 어렸을 때 평양에서 방학을 맞아 모친 로제타의 허락을 받아 평양시내 동굴을 친구와 탐험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동굴이 개발되지 않았고 문헌에만 나와 있는 자료를 가지고 어린 셔우드 홀이 엄마의 허락을 받아 동굴을 탐험한다.

자칫하면 동굴의 미로를 헤매다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대단한 동굴 놀이를 시도한 것이다. 부친 제임스 홀이 조선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모친 로제타는 계속 조선에 남아 선교를 하면서 어린 아들 셔우드를 키웠다.

한번은 평양에 병원을 세우는데 어린 아들 셔우드를 공사 책임자로 세운다. 우리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중에 셔우드 홀이 의사가 되어 해주 구세병원이라는 최초의 결행 전문 병원을 세울 때 어린 시절 평양병원 건축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자유놀이는 규칙이 정해진 운동경기보다 훨씬 창의적인 반응을 요구하므로 뇌의 발육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생물학자들은 놀이를 하는 동물일수록 지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은 놀이를 통하여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의력과 규칙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놀이는 이제 치료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 ‘놀이 치료’ ‘놀이 치료사’라는 분야가 나올 만큼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선교사들이여, 창조적으로 놀아라 김용기 장로님이 설립한 가나안 농군학교 신조 가운데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가 있다. 이 정신에 입각하여 교회가 부흥하였고 새마을 운동도 일어나 우리가 이 정도 경제 부흥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일’을 ‘놀이’와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 선교사가 선교를 잘 하려면 현지인들과 잘 놀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놀이는 관계 증진을 위한 관계의 도구로서 놀이를 말한다.

가족이나 선교사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면서 노는 것 말고 현지인들과 생산적으로 놀 줄 알아야 한다. 어느 선교지에서는 축구를 좋아하는 선교사들이 팀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 정도 운동을 하는데 그 나라 경찰 팀, 군인 팀 등과 친선 경기를 하면서 교제를 한다고 한다. 가끔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긴 하지만 건강증진과 관계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면 권장할 일이다.

선교사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선교사로 나갈 확률이 많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어려서부터 자녀들을 공부로 속박할 것이 아니라 마음껏 뛰놀게 함으로써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 준다면 부모 당대에 하지 못한 창조적인 선교활동을 자녀 대에 이르러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발달한 놀이방 등도 ‘놀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이다. 이런 것들도 선교적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