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환경의 변화와 시니어 선교
최철희 선교사(이모작선교네트워크)
최근 들어 시니어선교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선교지의 환경 변화이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50-60세가 되어 선교사로 지원하여 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내가
속해 있는 WEC국제선교회의 경우에도 1960년 대 선교사
선발 기준을 보면 ‘30세 미만의 건강한 자’라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물론 지금은 연령 제한이 없다). 이와 같이
선교사의 연령 제한이 있었던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선교지에 가는 것만도 쉬운 여행이
아니었다. 지금은 항공을 이용하면 거의 하루, 많아야 몇
일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배를 타고 몇 달씩이나 오랜 항해를 해야 했고, 배에서 내려서도 육로를 통하여 내륙까지 이동하는 길이 그리 쉽지 않았다. 기껏해야
마차를 타거나 작은 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 멀고 험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선교지의 열악한 환경은
더욱 선교사들을 어렵게 했다. 아프리카는 ‘백인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거기에는 백인들이 견뎌내지 못할 풍토병들이 많았고, 맹수들이나
뱀, 곤충들의 침범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지역은 백인에
대한 강한 의심과 반감이 있어서 아주 잔혹하게 살인하는 일도 허다했다. 또 실제로 식인종들이 거주하는
지역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건한 젊은이가 아니면 도저히 버텨낼 수 없었다. 그 당시는 젊은이들조차 많은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 많았다.
개신교 선교가 시작된1790년에서 1850년까지
약 60년 동안 아프리카로 갔던 선교사들 중에 2년 이상
산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들 중에 도착한 후 6개월 안에
여러 가지 이유로 사망한 선교사가 3분의 2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889년 호주에서 온 데이비스 선교사는 서울에서 경상남도 지역을 향해 걸어서
여행했다. 당시 천연두와 폐렴이 돌고 있는 남부지방을 경유하여 6개월에
걸쳐 부산에 도착했는데, 그는 바로 도착하는 날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루비 캔드릭이라는 미국
텍사스 출신의 여자 독신 선교사는 1907년 9월 조선땅에
왔으나 급성맹장염에 걸려 이듬해 8월 세상을 떠났다. 당시
의료시설이 거의 없었던 조선땅에서 그는 선교의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이처럼 기후와 열악한
생활 환경, 풍토병, 긴 항해, 취약한 의술 등으로 젊은이들조차 버텨낼 수 없는 선교지의 환경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한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을 받았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우선 선교지까지의 오가는 교통 통신이 매우 발달했다. 아무리 열악한
지역이라도 항공으로 하루나 이틀이면 어느 곳이든 닿을 수 있다. 건강 문제 등 위급한 상황에서도 즉시
수송이 가능할 뿐 아니라, 선교지의 의료시설 역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호전되었다.
통신은 더 말할 것
없다. 예전에는 인편이나 우편으로 몇 날, 혹은 몇 달씩
걸려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서는 실시간 서로의 안부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이 가능한 어떤 지역에서도 인터넷 전화나 카카오 톡을 이용하여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시니어 선교사들에게 매우 좋은 환경이 열린 것이다.
다니엘서에는 이미 이
시대를 예언하지 않았던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 4).”
미션21 2014년 8월 기고